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77) 탄현작은도서관 활동가 박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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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77)
탄현작은도서관 활동가 박희옥
마을의 주춧돌 도서관활동가 박희옥
파주에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작은 도서관들이 많다. 도서관이 사람을 키우고 아이를 키우고 마을을 오순도순 정답게 한다는 생각으로 작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벌였던 시민들이 있었다. 한 9년쯤 전이던가?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이 운동은 어느새 시책 사업이 되어 파주 전역에 작은 도서관이 마을마다 아파트마다 생겨난 것이다.
이 중 탄현면 법흥리 마을회관 옆 ‘탄현작은도서관’에서 도서관활동가 박희옥 씨를 만났다. 박 씨는 지난 5월 11일부터 6월 29일까지 있었던 ‘탄현문화연대 시즌 2’에 초빙된 강사다. 학교 사서들과 도서관에 도움을 주는 학부모들, 독서동아리 회원들이 모였다. 어떻게 하면 내가 속한 도서관에서 좀 더 행복하게 일하고 나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를 함께 의논하고 프로그램을 짰다. 그래서 ‘어른아이, 책으로 자라다’라는 주제로 강사들을 섭외했고, 박 씨는 이때 ‘책 빌리는 사람에서 사람책이 되기까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도서관활동 사례들을 들려주었다.
30년 걸려 만든 도서대출증
“제가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기까지 몇 년이 걸린지 아세요? 30년 걸렸어요.”
77년생. 아들 하나 낳고 기르는 그의 어린 시절, 파주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학교도서관도 흔치 않았다. 동네 서점도 없었다. 94년 금촌 도서관이 파주에 처음 생기고 그녀는 태어나 처음 도서대출증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의 나이 30에.
도서관도 서점도 없는 환경이어서, 본인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로 10대를 보냈고 20대에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했다. 고 3때 담임선생님이 대입진학원서에 유아교육과로 써놓은 것을 조리학과로 고쳐서 응시했다. 과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래서 전공은 조리학이다.
독서교사 양성과정 교육을 받아
“파주군일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지요(7세에 이사옴). 덤프트럭이 계속 왔다 갔다 했어요. 민들레병원부터 탄현초등학교까지 걸어 다녔는데 집에 가서 거울을 보면 온 몸이 하얀 먼지로 뒤덮여있었어요.” 헤이리 500년 된 나무에서 놀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파주가 도농복합도시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어른이 되었고, 가정도 그곳을 멀리 떠나지 않고 꾸렸다.
2011년도에 독서리더양성과정, 북스타트, 작은 도서관 협의회에서 주최했던 독서교사양성과정이 있었다. 파주에서 처음 생긴 강좌들이었고 몇 십 명의 사람들이 모일만큼 인기 있었다. 그가 ‘도서관과 책’이라는 신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때였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오전에는 파주중앙도서관에서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교하도서관에서 듣고 했다.
“부모교육 삼아 재미있게 들었던 강의가 저를 도서관활동가로 만들어주었어요.”
부꾸미 책놀이활동가들의 모임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부꾸미 책놀이활동가들의 모임’을 후속으로 가졌다. 같은 해에 탄현 작은도서관이 생겼다. “탄현에 도서관이 생긴대.” 하고 누군가 알려줘서 구경삼아 갔다가 자원봉사자가 되었고 지금 도서관을 지키고 있는 김미숙 상근실장님과 함께 운영위원이 되었다.
“아무 것도 없었어요. 시멘트 바닥 위에 은박돗자리 깔고 사서선생님들과 간담회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책에 도서관 라벨을 붙이는 작업부터 점차 도서관을 채워갔다. 책꽂이 위 빈 공간을 채운 그림도 그가 그린 것이다. 사람들은 화가나 그림책 작가의 솜씨라 말하곤 한다.
‘동네 친구들과 신나는 골목놀이’
자신의 손길이 구석구석에 닿아있는 도서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배운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공간, 여기 탄현 작은 도서관이지요.”
‘동네 친구들과 신나는 골목놀이’를 2011년부터 했다. 책을 좋아하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했던 사람을 강사로 만들어준 프로그램이다. 초보 강사였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세 시간에 할 내용을 그때는 한 시간 안에 다 넣어 하곤 했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 비폭력 대화, 전래놀이 등을 배우는 족족 아이들과 함께 해 보았다.
“그때는 참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이들이 제 선생님이 되어 있더라구요. 하하.”
처음 독서리더양성 등의 강의를 들을 때 이것으로 직업을 가지려 하거나 뭔가를 도모하려 했던 사람들은 지금 도서관에 남은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냥 재미있어서 목적 없이 들었던 사람들이 도서관활동가로 8년의 세월을 쌓고 있다. 초기에는 다 자원봉사로 강의했다. 이제는 경력을 인정받아 강사료 받는 곳이 많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큰 효과가 있다는 말이 맞다는 것을 그가 증명하고 있다.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도서관활동가
도서관에서 아이를 키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엄마가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을 때 도서관에서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슬기롭게 대처한다. 가령 학교 선생님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아이들이 깨우치지 못하면 발달이 느리거나 뇌 활동에 문제가 있는 아이로 간주하곤 한다. 느리게 배울 수 있다는 것, 느리게 배워도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선생님 기분 상하지 않게 잘 얘기할 수 있는 지도 선배 학부모들에게 듣는다. 작은 도서관이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떠들지 못하게 하고 읽던 책을 옆에 쌓아놓으면 사서가 와서 재깍재깍 정리하는 큰 도서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아이에게만 꿈꾸라 말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이 모르는 새에 꿈을 꾸게 되고, 꿈을 꾸고 있다. 박희옥 그도 그림책작가가 되어볼까 꿈을 꾼다. 김중석 선생님께 그림책 만들기를 배웠다. 공모전에 내 볼 생각이다.
“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안 해본 것을 하게 되었잖아요. 미개척지를 가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지요. 하하.”
위로 받고 위로를 읽어주는 ‘북스타트’
그는 ‘북스타트’ 강의를 가장 감명 깊게 들었다. 그래서 탄현 작은 도서관에서 바로 해보자 해서 ‘북스타트’ 강사가 되었다. 돌 전후부터 걸음마를 땐 아기들까지 엄마에게 안겨서 도서관에 온다. 엄마들은 아기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기 위해 도서관에 첫걸음을 하는 것이다. 차츰 차츰 아기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엄마들이 소통하고 치유하는 장이 된다. ‘북스타트’로 만난 아기가 일곱 살이 되어 ‘마당에서 크는 아이들’ 프로그램에 왔을 때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격과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그림책 한권을 빼들고 표지부터 천천히 보여주며 읽었다.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마달레나 마토소 그림, 그림책공작소,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는 사물에서부터 생명, 자연, 생각까지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부꾸미 책놀이활동가들의 모임에서 만난 책. 힘들 때 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이 책을 아기 엄마들에게 읽어주면 백발백중 반응이 좋다. ‘북스타트’는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먼저 위로 받고, 듣는 사람이 또 위로 받는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가 자랄 뿐 아니라 엄마도 자란다.
그는 ‘북스타트는 공동육아이다’라고 정의했다.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공동육아일까? 엄마들이 만나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치유하는 것. 그 속에서 마을 아이들이 함께 크는 이것이 공동육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공간과 친해지고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1,2년 안에 되는 일이 아니에요. 마을 도서관은 계속 발길 해야 해요. 하다보면 뭔가 생겨나요. 저도 그랬잖아요. 요즈음 여기저기 생기고 있는 작은 도서관들에게도 말하고 싶은 것은 매일 문 열어 놓는 것,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맥주 마시며 책 읽는 서점을 하고 싶다는 그. 마을의 주춧돌이다. 작은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아이들이 자라고 어른들이 만나고 마을이 따뜻해진다. 그 속에 도서관활동가가 있기 때문이고, 박희옥 그는 이 일을 끝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허영림 기자
사진 이성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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